하루의 끝을 향해
가는 이 늦은 시간,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다 보면 옆에 앉은 한 고단한 사람 졸면서 나에게 기댈 듯
다가오다가 다시 몸을 추스르고, 몸을 추스르고
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기대올 때 되돌아왔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얼마나
많은 망설임과 흔들림 수십 번 제 목이 꺾여야 하는 온몸이 와르르 무너져야 하는
잠든 네가 나에게 온전히 기대올
때 기대어 잠시 깊은 잠을 잘 때 끝을 향하는 오늘 이 하루의 시간, 내가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한 나무가 한
나무에 기대어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기대어 나 아닌 것 거쳐 나인 것으로 가는, 이 덜컹거림
무너질
내가 너를 가만히 버텨줄 때, 순간, 옆구리가 담장처럼 결려올 때
- 고영민의 시집《악어》(실천문학) 중에서
[감상] 늦은 밤, 귀가길의 지하철에서 누구나 한 두 번쯤은 겪었을
상황을 ‘나’와 ‘타자’의 “관계”라는 측면에서 묘사한 시입니다.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와르르 무너지기 위해서는 수십번 제 목이
꺾여야 하는 ‘망설임’의 징후와 완전한 ‘자기 부정’을 통한 상대방과의 동일성의 과정을 거쳐야 함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.
내가 나 아닌 누군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것, 그리고 그 기댐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예각(銳角)이야말로
우리네 삶을 따뜻하게 하는 “관계”가 아닌가 싶습니다. 고단한 사회가 암시하는 ‘덜컹거림’을 서로에 대한 ‘기댐’을 통하여
완화하는 리듬이야말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삶의 운율이자 사회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겠지요. 우리 모두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
느닷없이 “옆구리가 담장처럼 결려오는” 그런 시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. [양현근